2016년, 전 세계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사적인 대결을 숨죽여 지켜봤습니다. 세기의 대국으로 불렸던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인간 대표의 바둑 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인류의 자존심을 걸고 싸웠던 한 명의 프로 기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의 창의성으로 인공지능에 유일한 1승을 거둔 이세돌 9단입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인공지능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한복판에서, 알파고를 직접 겪은 이세돌 9단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전하고 있을까요? 최근 삼성SDS가 주최한 ‘리얼 서밋 2025’에서 유니스트 특임교수로서 강연에 나선 이세돌 교수의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고 강력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AI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 나갈 수 있는 4가지 핵심 방법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단순 ‘이용’을 넘어 ‘활용’의 단계로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을 다방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 시간이 꼬박 걸리던 발표 자료 준비가 인공지능 덕분에 단 5분으로 줄어드는 경험, 많은 분이 해보셨을 겁니다.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거나 복잡한 데이터를 요약하는 등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AI에게 맡겨 효율을 높이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세돌 교수는 이러한 단계를 AI의 단순한 ‘이용’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AI를 편리한 도구로 사용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 절약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백한 이점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진짜 격차는 AI를 창의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활용’이란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해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통찰력과 판단력을 결합해 더 나은 결과물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강조하는 AI 시대의 핵심 역량이며, 단순 사용자와 진정한 활용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격차를 만드는 진짜 열쇠, AI와의 협업 능력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AI와의 협업 능력이 어떻게 개인과 집단의 격차를 벌리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보드게임 공동 개발자, AI
이세돌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과 협업하여 직접 보드게임을 개발한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보드게임을 만들어줘’와 같은 일방적인 명령을 내렸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질문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AI를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닌, 아이디어를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공동 창작자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밑그림을 제시한 뒤, AI에게 구체적인 규칙과 스토리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AI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 다시 질문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대화와 소통의 과정을 통해 게임은 놀랍도록 빠르게 완성도를 갖춰나갔고, 현재 실제 출시를 앞두고 있을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AI를 단순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인 파트너로 ‘활용’했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올바른 질문과 소통을 통해 AI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바둑계의 역설: 정답지가 있는데 왜 격차는 더 벌어졌을까?
AI가 바둑계에 도입되었을 때, 많은 사람은 모든 기사가 AI라는 ‘정답지’를 참고하게 되므로 상위권과 하위권의 실력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AI 도입 이후, 최상위 랭커와 나머지 기사들 간의 격차는 오히려 더 크게 벌어졌습니다.
이세돌 교수는 그 이유를 바로 ‘활용 능력의 차이’에서 찾았습니다. 하위권 기사들은 AI가 제시하는 수를 단순히 모방하거나 참고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들은 AI를 정답을 알려주는 계산기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반면, 최상위 랭커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AI가 왜 그런 수를 두었는지 그 배경과 원리를 파고들며 AI의 수읽기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AI의 제안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기풍에 맞게 체화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즉, AI를 스승이자 스파링 파트너로 삼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결국 모두에게 동일한 정답지가 주어졌음에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극명하게 달라졌습니다.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는 AI의 창의성
알파고와의 대국 당시, 이세돌 9단이 가장 충격을 받았던 순간 중 하나는 AI가 인간이라면 결코 두지 않을 것 같은 낯선 수를 두었을 때라고 합니다. 그 수는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특별히 어려운 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수백 년간 축적된 바둑 이론과 정석의 틀 안에서 훈련받은 프로 기사들에게는 생각의 범위 밖에 있는 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왜 저도, 그리고 수많은 한국, 중국, 일본의 기사들도 그 수를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두면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일화는 인간이 얼마나 강력한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기존의 지식과 경험이라는 틀 안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AI는 인간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습니다. 데이터와 패턴을 기반으로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을 뿐,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AI의 특성이 인간의 눈에는 놀라운 창의성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AI 시대에 우리는 AI의 이러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을 확장해야 합니다. AI가 제시하는 낯선 아이디어나 해결책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라고 질문하며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 질문하고 소통하는 힘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입니다. 이세돌 교수는 AI 시대에 필요한 핵심 역량으로 기술 숙련도가 아닌, 질문하는 능력, 판단력, 그리고 소통 능력을 꼽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AI에게서 정답을 얻는 시대가 아니라, AI와 함께 정답을 만들어가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바로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입니다. 좋은 질문은 AI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생각의 지평을 넓히며, 창의적인 결과물로 이어집니다.
단순히 ‘A에 대해 알려줘’가 아니라, ‘A라는 관점에서 B를 분석하고, 예상되는 문제점과 대안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해줘’와 같이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AI가 내놓은 결과를 맹신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방향을 수정해주는 소통의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결국 생각을 확장하려면 질문을 바꿔야 하고, 질문을 바꾸려면 우리 인간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AI를 단순 검색 도구가 아닌, 생각의 파트너로 여기고 끊임없이 대화하고 질문하는 연습을 시작해야 합니다.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인공지능의 실체를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경험한 이세돌 9단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AI의 등장을 위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고 한계를 뛰어넘게 해줄 강력한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조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AI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사용자’에서 AI와 함께 생각하고 창조하는 ‘협력자’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그것이 바로 격변하는 AI 시대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더 큰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바둑판은 이미 바뀌었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규칙에 맞춰 다음 수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