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 기업들의 시선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전 업계의 거인들이 최근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바로 유럽입니다. 과거에는 북미 시장이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다면, 이제는 까다롭지만 안정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이곳이 새로운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5에서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저마다 이 지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비장의 무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들의 전략 속에는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이 대륙의 문화와 가치, 그리고 생활 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IFA 2025 현장에서 포착된, 글로벌 기업들의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5가지 핵심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세계 가전 시장의 새로운 중심, 왜 유럽인가?
글로벌 가전 기업들이 갑자기 유럽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주력 시장이었던 미국 등에서 발생하는 무역 관련 불확실성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기업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보다 안정적인 시장을 찾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은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거대한 소비 시장이라는 의미를 넘어,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명확한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포진한 곳입니다. 높은 전기 요금과 환경 문제에 대한 민감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고효율, 친환경 제품에 대한 수요로 이어집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의 이익을 넘어 미래 기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최적의 테스트베드인 셈입니다.
까다로운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법
유럽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성능뿐만 아니라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사용 시 환경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폐기 후의 처리까지 고려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는 개인의 노력이 사회 전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넘어 ‘올바른 제품’을 만들어야만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IFA 2025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IFA 2025에서 공개된 5가지 핵심 공략법
이번 IFA 2025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정교한 전략들을 선보였습니다. 에너지 효율 경쟁부터 지속가능성, 공간 맞춤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섯 가지 핵심 트렌드를 통해 미래 가전 시장의 청사진을 엿볼 수 있습니다.
1. 에너지 효율: ‘A등급’을 넘어선 극한의 기술 경쟁
유럽에서는 가전제품에 부착된 에너지 효율 등급 라벨이 소비자 구매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최고 등급인 ‘A’는 프리미엄 가전의 기본 소양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올해 IFA에서는 단순히 A등급을 만족하는 것을 넘어, 그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초고효율 제품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독일의 명품 가전 브랜드 밀레(Miele)는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A’라는 문구를 크게 내걸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이 선보인 신형 세탁기는 A등급 기준보다 무려 40%나 에너지 소비가 적고, 식기세척기 역시 기존 제품 대비 효율을 10% 이상 개선했습니다. 이는 높은 전기 요금으로 고민하는 현지 소비자들에게 매우 강력한 소구 포인트가 됩니다.
이러한 에너지 효율 경쟁은 비단 독일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하이얼, TCL 등 중국 기업들 역시 전시장 곳곳에서 ‘A’ 등급을 획득한 제품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연간 탄소 배출량 절감 수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등 기술력을 과시했습니다. 이제 에너지 효율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기업의 기술력과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동시에 보여주는 척도가 되었습니다.
2. 지속가능성: 제품의 탄생부터 폐기까지 책임지다
에너지 효율이 ‘사용’ 단계의 친환경이라면, 지속가능성은 제품의 전 생애 주기를 아우르는 더 넓은 개념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원자재 선택, 생산 방식, 재활용 가능성까지 고려한 제품들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 혁신적인 소재의 발견: 냉장고 전문 기업 리페르(Liebherr)는 화산암을 가공한 ‘블루록스’라는 신소재 단열재를 적용한 냉장고를 공개했습니다. 이 소재는 기존 단열재보다 재활용이 용이하고 제품 수명을 늘려,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데 기여합니다.
- 사용 중 환경보호 실천: LG전자는 세탁 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새롭게 개발한 ‘마이크로플라스틱 케어 사이클’은 특수 필터를 통해 의류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의 약 60%를 걸러내 해양 오염을 줄이는 기술입니다.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가전을 사용하기만 해도 환경 보호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 전시 공간마저 친환경으로: 밀레는 전시관을 설계할 때부터 재사용 가능한 자재와 모듈형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이를 통해 운송 및 보관 비용을 50% 절감하고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했습니다. 제품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3. 공간 맞춤형 디자인: ‘빌트인’의 재해석
유럽은 비교적 주거 공간이 좁고, 가구와 가전이 조화롭게 통합된 ‘빌트인’ 인테리어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단순히 제품을 작게 만드는 것을 넘어,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심미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LG전자는 ‘핏앤맥스(Fit & Max) 존’을 통해 이러한 트렌드를 선도했습니다. 불필요한 공간 낭비 없이 주방 가구처럼 딱 들어맞는 디자인을 구현해, 깔끔하고 통일감 있는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는 좁은 공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현지 소비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고든 전략입니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인피니트 라인 후드일체형 인덕션’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이 제품은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와 냄새를 빨아들이는 팬과 필터를 인덕션 내부에 통합했습니다. 덕분에 주방 상부 공간을 차지하던 커다란 후드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개방감 있고 세련된 주방 디자인이 가능해졌습니다. 여기에 유럽 에너지 효율 기준 최고 등급인 A++까지 구현하며 디자인과 성능을 모두 잡았습니다.
4. 한국 기업들의 빛나는 현지화 전략
이번 IFA 2025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유럽 시장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있는지를 증명했습니다. 앞서 언급된 사례들처럼, 이들은 현지의 특수한 요구와 가치를 제품에 완벽하게 녹여냈습니다.
LG전자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시장의 관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 영향이 유럽 시장에도 미치고 있다”고 언급하며, “그동안 쌓아온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유럽 시장에 전략적으로 더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는 불확실한 외부 환경에 대응하여, 가장 잠재력 있는 시장을 정조준하겠다는 명확한 의지 표명입니다.
삼성전자 역시 에너지 효율과 빌트인 디자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제품을 통해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전략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제품을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현지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현지화의 귀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5. 순환 경제: 버려지지 않는 가치를 만들다
단순히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제품과 부품이 계속해서 순환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순환 경제’ 개념이 가전 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는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자원의 사용을 극대화하려는 유럽연합(EU)의 강력한 정책 기조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전시회에 참여한 많은 기업들이 제품의 수리 용이성, 부품의 표준화, 중고 제품의 재활용 프로그램 등을 강조하며 자사의 순환 경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한번 판매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소비자와 관계를 맺고 환경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환경을 중시하는 유럽 소비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며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격전지
IFA 2025는 글로벌 가전 기업들에게 유럽이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닌 필수 공략 시장이 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무역 환경의 변화가 촉발한 시장의 재편은 결과적으로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전제품은 초고효율 에너지 절감 기술, 제품 전 과정에 걸친 지속가능성, 그리고 사용자의 공간과 삶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맞춤형 디자인을 모두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유럽이라는 까다로운 시장에서 시작된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머지않아 전 세계 가전 시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결국, 이곳에서의 성공은 곧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을 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과 현지화 전략으로 이 거대한 시장의 주인공이 될지, 그들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